탄금대
가막산 일원에서 뻗은 산줄기는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이름을 달고 속리산으로 이어지고, 그곳 서편으로 뻗은 맥을 소속리산(小俗離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다시 한 가지가 거슬러 뻗어서 옥장산ㆍ팔성산 등이 되고 말마리에서 그쳤는데, 그 마을이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가 죽임을 당하자 중종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유춘역으로 장배되었던 조선시대의 명현(名賢) 십청(十淸) 김세필이 벼슬에서 물러나 살던 곳이다.
마을 앞으로 남한강이 흐르므로 논에는 1묘에 1종을 거두는 곳이 많은 까닭에 예로부터 흉년 드는 해가 적었다는 이곳은, 한양과 가까워 2백 리 거리이며 물길로 여주와 통하기 때문에 살 만한 곳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 말마리와 금천, 가흥, 강 북쪽의 중원군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내창(內倉)을 충주의 사대촌(四大村)이라고 부른다.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옆에 대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달천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합수머리 안쪽에 솟은 이곳은 신라 때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부른다.